이른바 ‘학폭’의 가해자는 열 살 먹은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였다. 같은 반 옆자리 여자아이의 손등을 샤프연필로 찌른 것을 포함해 모두 3명을 괴롭혔다는 ‘혐의’였다. 학교 안에서 열린 학교폭력위원회는 가해 아이에게 반을 옮기고 피해 아이에게 사과문을 보낼 것을 결정했다.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던 주변의 수근거림에 아이의 어머니는 다니던 성당에마저 발을 끊었으며, 집에서 동네아이들을 가르치던 과외교습을 그만 뒀다. 시간이 지나 이제 그 아이는 작곡가를 꿈꾸는 열여덟의 고등학교 2학년생이 됐다. 대학을 졸업하면 유명 뮤지션이 되고
한국에서 인터넷 언론이 백화제방(百花齊放)의 시대를 질주하고 있다. 신문 제호 작명소가 있을까 싶을 만큼 온갖 이름의 매체들이 비 온 뒤 죽순처럼 생겨나 이미 1만개를 넘어 2만개에 이른다는 얘기도 들린다. 신문제작에서 종이를 없앤 인터넷 신문의 특성은 일단 지구환경의 시대정신에는 맞다. 더욱이 과거 ‘조중동’이 상징하는 거대중앙언론의 여론 독점 시기를 돌이켜보면 미디어의 양적 팽창은 언론자유의 한 실상이기도 하다.하지만 다 매체 시대에 침투한 언론의 과잉은 한국사회에서 저널리즘을 ‘거질리즘’으로 착각하게 만들만큼 많은 문제를 양산
지난 2016년 늦은 봄 충남 당진시에서 열린 시민토론회에 토론자로 발표를 한 적이 있다. 주제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와 지역사회의 환경 분쟁 및 지역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필자는 당시 포스코 제철소가 위치한 포항에 본사를 둔 언론인이자 시민단체 일원의 자격으로 초청을 받았다. 그날 행사의 목적은 당진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철강업 선배도시인 포항지역사회가 포스코와 공해 문제는 물론 지역협력을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 벤치마킹하려는 것이었다.당시 현대제철은 한보철강에서 인수한 당진제철소의 중국산 저가 설비와 이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어제 1주일만에 출근했다. 공무원의 퇴근을 1시간 앞두고 출근하는 그의 모습을 개선장군으로 보고 싶지는 않았다. 아마 청와대와 여권에게 윤 총장은 지난 1년 동안 도저히 상상도, 예상도 하지 않았던 '블랙스완'(black swan)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그는 트로이 목마로 보였다. 차이가 있다면 적이 보낸 위장된 선물이 아닌 자초한 재앙쯤이라고 할까.지난해 검찰총장 인사 당시 내가 기대한 총장 후보는 따로 있었다. 이제 변호사인 그와 윤 총장은 대구지검 포항지청을 거쳐 갔다는 공통점이 있
이 가을에 삼성 이건희 회장이 떠났다. 글을 쓰기 전에 그의 장례식을 전후해 언론에 나온 칼럼들을 검색해봤다. 이회장과 삼성이 우리나라, 아니 세계 경제에 미친 영향을 고려할 때 칼럼 수는 예상보다 많지 않았다. 이는 그를 조문하고 나온 정·재계 인사들의 짧은 인터뷰가 곧바로 엄청난 논란을 초래한 한국사회 여론 구조의 현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망자의 영정 근처에서 추모의 변에 이어 공과와 영욕, 이 두마디에 기업인 이건희 회장의 삶은 편리하게 압축됐다. 칼럼을 쓰는 입장에서는 조국 사태 때처럼 찬반이 당장 달려들듯 대치하는 여론
이 세상은 결국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저 80년 전에도 고뇌하며 쓴 시처럼 '서정시가 어울리지 않은 시대'로 그쳐버릴 것일까. 히틀러와 나치즘이 자행하는 광포에 대한 분노로 대지와 생명의 아름다움 조차 예찬할 수 없었던 시인의 고통은 인권이 때로 과잉되기도 하는 이 시대에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비접촉'이 미덕이 된 사회는 인류 공동의 난제인 양극화를 부추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3월 31일 의사와 간호사 등 방역 최일선 뿐만 아니라 청소부와 슈퍼 직원 등을 호명하며 인류를 위해 특별기도를 했다.연로한 청소부들은 외지고 퀴퀴한
의사라는 직업은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문직으로서 고도의 지식과 수련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그만큼 그 종사자들의 직업적 자부심이 높고 사회적 명성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진다. 법률가도 마찬가지다. 의사와 판검사가 소위 잘 나가는 정도로 따지자면 전 세계 어느 사회도 한국을 따라 올 곳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농공상 위계의 조선에서 의원은 양반 아래 중인(中人) 신분에 머물렀다. 인술(仁術)을 행하고 있지만 돈을 댓가로 받는다는 이유였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의사들의 파업에 온 국민이 공분하는 현실을 보면서 봉건사회의 의사관(觀
‘(미문화원 점거사건)항소심 변론요지서는 박원순 변호사가 초를 잡고 우리가 논평을 해서 보완을 한 것이지요. 말씀대로 박원순 변호사는 그때 30대 초반의 연부역강(나이는 젊고 힘은 센)한 변호사였는데 이 시기부터 우리와 함께 인권변호사 대열에 합류했어요.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 사건 변론요지서가 박원순의 데뷔작이에요. 나중에 부천서성고문, 한국민중사, 보도지침, 구로 동맹파업 등 많은 사건에서 우리와 함께 한 청년변호사의 등장을 이 사건에서 보여줍니다.’한국의 인권변호사 1세대 홍성우 변호사가 70~80년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광복절을 앞두고 벌써부터 반일 감정이 슬슬 고개를 들고 있다. 오히려 일본이 부추기기라도 하듯 한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잇달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7월 일본 정부가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삭제한다는 방침을 밝힌 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기업은 두말할 나위 없이 롯데이다. 롯데로서는 요즘 코앞에 닥쳐온 7·8월에 또 어떤 여파가 미칠지 벌써부터 악몽이 되살아날 것이다.롯데의 창업 뿌리는 원래는 옷의 띠만큼 좁은 강처럼 가까운 사이라는 뜻의 ‘일의대수’(一衣帶水)의 한일 관계에 모범적 상징이다. 식민지청년 고 신격호 창업회장
전쟁사를 들여다보면 남성의 폭력성과 광기에 비례해 여성에게 자행되는 온갖 패악의 실상들이 생생히 드러나는데 그 중의 최악은 강간이다. 벨라루스의 기자 출신 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전시 여성 성착취 보고서나 다름 없다. 200여명의 2차대전 소련군 참전 여성들을 인터뷰한 이 책에는 독일로 진공한 남성 아군들이 적국의 민간인 여성들을 얼마나 잔인하게 유린했는지를 고백하고 있다. 독일 통일의 주역인 고 헬무트 콜 총리의 부인 하넬로레 콜도 그 피해자 중의 한명
최근 포스코에 대한 매우 낯선 수사가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포스코가 마치 검찰의 불가침 영역인 것처럼 유독 나서지 않던 경찰이 포항제철소의 3억원대 납품 계약에 대해 내사기간까지 합치면 11개월째 수사를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부장급 기술직 간부가 참고인 조사를 받은 다음날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 외근기자 시절 늘 검찰을 출입한 경험에서 경찰의 포스코 수사나 피조사자 임직원이 유명을 달리한 일은 아직까지 별로 기억에 없다.포스코가 최정우 회장 취임 이후 새로운 기업이념으로 알려온 ‘기업시민’의 관점에서 이번 일을 생각해봤다. 본
신경림 시인의 '갈대'의 싯구처럼 온 세상이 몸을 숙인 채 속으로 조용히 흐느끼고 있는 것 같은 요즘이다. 불황이 일상이 돼버린 세상에서 중국발 역병은 서민들을 기어코 나락까지 내몰아 버리려고 작정이라도 한듯이 꺾일 기미가 없다. 남녘땅 영일만 한켠에 자리 잡은 고향에서 들려오는 소식들도 봄바람의 따뜻한 기운과는 거리가 먼 팍팍한 일들 뿐이다.2년 4개월 전 이 도시의 사람들은 인간의 탐욕이 과학기술을 끌어들여 잉태해낸 돌연변이형 재난에 끔찍한 피해를 당했다. 영일만 일대 내륙의 연약한 지질 특성을 무시하고 강행된 지열발전소 건설과
코로나19사태로 인해 한중일, 동북아 3국에 엄습한 공포감은 날을 더 할수록 그 국민들만큼이나 최고 권력자와 집권당에게도 위협적이다. 특히 이번 유행병의 종주국인 중국은 영웅적인 의사들의 잇단 죽음에 대한 인민의 추모 물결이 반체제의 대열로 이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시진핑의 마스크까지 벗겼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이 우한에서 발생한 역병을 은폐한 만큼이나 큰 패착의 첫 단추는 의사와 언론인 등 지식인들에게 벌인 탄압이었다.만약 중국공안이 코로나19 발병을 처음으로 알리고 사망한 의사 리원량을 소환해 훈계서를 강요하는 등 겁박하지 않
중국과 대만의 국부, 쑨원을 중심으로 한 신해혁명은 민군이 무장 봉기로 청나라를 타도, 장장 2000년간 왕조가 이어진 중국대륙에 민주공화정을 탄생시킨 근대적 혁명운동이다. 1911년 10월 10일, 이제는 쌍십절(雙十節)의 국가 축제이자 대만의 건국기념일로 지정된 그날 밤, 혁명군이 거사 기치를 올린 우창봉기의 무대 우창은 이후 한커우, 한양과 합쳐져 현재의 우한이 됐다. 마오쩌둥의 중국공산당이 신중국의 기반을 놓은 기념지로 삼아 시민의 자부심이 높고 119년 전 혁명 열병의 도가니였던 이 도시가 이제는 봉쇄된 채 역병의 열병에
2019년의 일력을 겨우 너댓장 남긴 세밑 여의도 출퇴근길 도로는 평일인데도 벌써 여느날에 비해 한산해 보인다. 이른바 '동여의도'의 하늘로 빌딩들을 경쟁하듯 쏘아올린 증권회사들이 연말을 앞두고 일찌감치 휴가에 들어간 영향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의도역을 비롯해 증권맨들이 빠져나간 이 거리에는 여전히 그들이 누리는 근로여건의 혜택에는 어림도 없는 사무직과 육체 근로자들이 바쁜 발걸음을 하고 있다.이 한해 동안 출근길 길거리 곳곳에서 마주친 여의도 사람들의 표정과 말씨, 옷매무새를 틈틈이 봐 왔다. 한눈에 봐도 물 찬 제비 같은 모
나는 부끄럽지만 SNS에는 문외한이나 다름 없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으로 네티즌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낯선 신념’에 자각해 한때 몸서리 쳤던 때는 있었다. 하지만 드루킹 댓글 사건은 SNS와 불화의 한 결정적 계기가 됐으며 이후 아직까지 ‘톡’ 외에는 그 근처에 얼씬도 안 하는 이유이자 핑계로 삼는 지경이다.꽃다운 나이의 두 여자 연예인의 어이 없는 비극을 겪고 있는 한국 사회가 이번에도 헌법적 표현의 자유라는 커튼 뒤에 숨어 또 어물쩍 넘어갈 것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쉼 없이 움직이고 있을 저 수많은 ‘손가락들’에
취재기자 시절 법조 출입을 담당하면서 경험한 검사와 검찰청은 권력의 실체가 무엇이며 이를 개혁하기란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를 알게 하는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검찰이 견제 장치 조차 거의 사라진 채 무소불위의 위치에 오르게 된 때는 고 노무현 대통령 재임 당시였다.역대 어느 권력자보다 검찰 개혁 의지가 강했던 그의 집권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국가정보원은 검찰에 대한 위력적인 견제 세력이었다. 국정원 전국 조직망의 검찰 조정관은 수시로 검찰을 출입하는 한편 룸싸롱 마담 등 정보망을 활용해 평검사와 간부들에 대해
30여년 전 청년 조국이 가담한 사노맹의 기관지 ‘노동해방문학’(노해문)의 기치는 ‘노동자 계급의 당파성’이었다. 87년 민주항쟁과 6.29선언에 이어 ‘노동자 대투쟁’의 시기를 맞아 발간된 이 잡지는 사노맹의 결성만큼이나 학생운동권에 충격을 줬다.특히 'PD'(민중민주) 계열 대학생들은 노해문을 읽으며 ‘학출’(대학생 출신)로서 ‘노출’(노동자 출신)의 당파성에 다가가지 못하는 계급적 한계를 고민하기도 했다. 조직활동에 가담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쓴 소주를 마시며 선후배들과 나눴던 그 시절의 당파성 고민을 최근 며칠 동안 30여년만
일본의 백색국가 리스트 제외 사태가 촉발시킨 불매운동으로 최근 국내에서 가장 피해를 보고 있는 대표적 기업은 롯데이다. 주로 SNS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롯데 디스'의 골자는 비교적 간단하다. 롯데의 지분 상당수가 일본 주주에게 있어 배당을 통해 국부가 유출되며 일본 회사와 합자해 국내 일본제품의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롯데칠성음료(주)의 지분을 일본의 아사히맥주가 갖고 있으므로 소주 '처음처럼'도 일본제품이라는 주장까지 확산됐다. 팩트를 수정하면 '롯데칠성음료와 아사히맥주는 한국에 50 : 50으로 합작한 판매목
구한말 ‘정한론’을 주장하며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 일본 군국주의 원조 이론가와 정치가들은 자주 ‘조선문제’를 거론했다. 이 논의에 언명을 편 그들의 태도는 조선이 가진 문제를 따지는 차원을 넘어서 ‘문제조선’이라는 오만함이었다. 그 종통을 이은 아베 수상이 최근 한국에 공세를 펴고 있는 무역 제재를 설계하면서 그 두뇌와 마음의 언저리에는 ‘조선문제’라는 도그마가 도사렸을 것이다.그 시나리오는 뻔하다. "침략역사의 부채에 밀릴 수만은 없다. 어차피 경제 재건에 궁했던 한국은 65년 식민지 배상이 핵심인 한일협정 비준을 선택한 과거가